경찰 차벽 위헌 논란
맥주곰
·2015. 9. 1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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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서울광장 통행저지행위 위헌확인
[지정재판부 2009헌마406, 2011.6.30]
차벽에 대해 합헌이다, 위헌이다 논란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아직까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차벽' 그 자체에 대해서 인용이나 기각, 합헌이나 위헌 등의 심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단정적인 표현 대신 ‘합헌일 수 있다’, ‘위헌일 수도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위헌일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 결국 헌재의 구체적인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법의 해석론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명백한 기준을 제시해주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 반대해석을 하는 경우에도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 사건은 헌마 사건입니다. 헌재는 사건부호를 '가'부터 '아'까지 붙이는데, ‘마’가 붙는 사건은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으로서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자신의 기본권이 침해되었을 때 제기할 수 있는 헌법소원입니다. 무작정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청구인 능력, 당사자 적격,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침해가능성, 소의 이익, 보충성 등의 여러 요건이 맞아떨어져야 하고, 요건에 맞지 않으면 본안 심리에 들어가지 않고 소가 각하됩니다. 요건의 적법성 여부를 따진 후 적법하면 그때서야 본안심리를 하게 됩니다.
본 사건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청구인은 서울특별시민이고 피청구인은 경찰청장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9년 5월 23일 서거하셨고, 이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시민추모위원회가 2009년 5월 27일에 서울광장을 사용허가신청을 냈으나 허가여부를 지체하는 바람에 사용예정일을 도과, 즉 사실상 거부당했습니다(서울시장 오세훈). 노제 개최 당시인 2009년 5월 29일에는 서울 광장을 잠깐 개방했고, 이후 다시 2009년 6월 3일까지 막았다가 2009년 6월 4일에 푼 것으로 기록에 나옵니다. 청구인은 서울특별시민으로서 2009년 6월 3일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고자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를 찾았고, 이후 그 건너편에 있는 서울 광장으로 가려고 했는데 경찰이 버스로 광장을 둘러싸 차벽을 만들어서 청구인의 서울광장 출입을 완전히 제지했습니다.
이에 헌재는
서울시의 서울광장 사용에 대한 실질적 불허가 처분과는 별개로 일반시민이 서울광장을 이용하지 못하게 한 것은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있고, 행정상의 즉시강제인 통행제지행위는 기실 행정쟁송의 대상이 됨에도 불구하고(즉, 헌법소원의 소의 이익이 없음) 청구인이 2009년 6월 4일 경찰버스를 철수시킴으로 인하여 청구인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도 (행정소송의)소의이익이 부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충성의 예외를 인정하였으며, 또한 피청구인이 이미 버스를 철수시킨 이상 청구인들의 주관적 권리구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헌법소원의 객관적 헌법질서 수호유지의 특성상 동일 유형의 침해행위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고 헌법적 해명이 긴요할 때는 심판청구의 이익을 인정하고 있는데, 피청구인의 답변서 내용과 2009년 6월 27일 다시 차벽을 설치한 행위를 봤을 때 위 요건에 해당된다고 보아 심판청구이익을 인정했습니다.
요건에 충족되었으니 이제 본안심리로 갑니다. 헌재가 인정한 것만 보면 됩니다.
경찰의 통행제지 행위에 대해서 청구권자는 거주이전의 자유나 공물이용권 및 일반적 행동자유권 등의 권리 침해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헌재는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일반적행동자유권이 침해된다고 결정했습니다.
일단 여기서 기본권의 제한을 좀 알아보겠습니다. 기본권은 그 자체로 무한정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이나 법률에 근거하여 제한할 수 있고, 다만 이때에도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습니다. 이걸 헌법유보 내지 법률유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개별적 헌법유보, 일반적 법률유보, 개별적 법률유보가 인정되고, 기본권 제한을 할 때에는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 균형성을 갖춰야 합니다(과잉금지의 원칙). 또한 기본권을 제한할 때에도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으며,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해서 반드시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아도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되면 위헌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일반적 행동자유권에 대해 헌재는 이렇게 판단합니다.
당시 사태가 심상치 않았으므로 경찰로서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헌재도 이를 감안하여, 불법·폭력적인 시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판단해서 취한 조치가 시민을 보호하는 범위 내였다면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절성까지는 인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절성을 인정했다고 해서 차벽을 만든 행위가 곧 합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절성은 과잉금지의 원칙 중 일부 요소일 뿐이고, 이런 요소가 무한정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a) 집회나 시위가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것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다분해야 하고 b) 이에 시민들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려는 목적의 범위 내에서라는 전제조건을 충족시키는 경우에 한합니다. 게다가 ‘~할 수’, ‘~될 여지가 있을 것이다’라며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은 이유는, 앞의 조건이 충족된다고 하더라도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를 따져봐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헌재는 침해의 최소성에 대해 판단하고 있습니다. 즉, 불법·폭력적인 시위에 대해 시민의 생명 등을 보호하기 위해서 차벽을 설치하는 행위에 대해 목적이 정당성하거나 수단이 적절하다고 보더라도 곧바로 차벽을 쳐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상황을 따져봐야 하고, 필요하더라도 최소한도로 행해져야 하며, 만에 하나 이런 조치로써 공익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곧바로 집회를 금지하거나 해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단지 ‘고려’할 수 있다는 겁니다. 보시다시피 조건이 아주 엄격한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주요 구성요소로서 다른 기본권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가집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에는 다른 기본권을 제한할 때보다 훨씬 엄격함이 요구되고, 단지 불법·폭력집회가 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금지됩니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중 하나가 바로 집회의 자유이기 때문에 그 제한의 엄격함 역시 이 사건 결정문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어서 헌재는 ‘일체의 집회 금지’와 ‘일반 시민들의 전면 통행금지’를 아울러 언급하면서 이런 전면적이고 광범위하며 극단적인 통행제지행위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취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매우 엄격한 요건을 요구합니다.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어떠한 것인지 구체적으로는 밝히고 있지 않으나, 적어도 집회를 조건부로 허용하거나 개별적으로 금지 및 해산하는 방법으로 방지할 수 없을 정도의 위험이라는 것은 본문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한편, 결정문 본문 중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곳에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이 모였고, 곳곳에서 경찰과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며 차벽을 설치한 행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모인 숫자와 규모로 ‘급박하고 명백하여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로 판단한다’ 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이에 대해 헌재는 본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앞서 헌재는 비록 불법·폭력집회라고 하더라도 경찰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필요최소한의 조치를 취해야 하며,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 바로 이 사건에서 경찰이 취한 통행제지행위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위 결정문을 보면 단순히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는 정도로는 불법·폭력적인 집회 및 시위를 할 것이라고 단정할 근거로조차 삼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사람의 수를 근거로 하여 급박하고 명백하여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로 판단하는 것은 더욱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알기로 현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에서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집회는 아래의 딱 두 가지 경우뿐입니다.
집회를 함부로 막으면 안 되는 이유는 자칫하면 집회가 허가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헌재가 작년에 다시 한 번 헌법에서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2011헌가29).
헌법 일반론으로 보더라도 폭력집회는 보호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폭력은 물리적 폭력을 의미하는 것이지 심리적 폭력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즉, 단순히 수가 많다거나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줄 정도로 얼굴이 폭력적으로 생긴 사람들이 집회를 한다고 해서 불법집회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또, 단지 4일 후까지 차벽을 철수시키지 않아서 위헌 결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아래 내용을 잘 보세요.
위 결정문에서 ‘어떤 것을 전제로 하고 그것과 같게’라는 뜻을 가진 접속사 ‘또한’이 아주 잘 보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위의 내용만을 근거로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한다면 전체가 아닌 부분만 보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헌재는 ‘앞의 내용에 더해서’ 2009년 5월 30일 이후로 아무런 집회가 예정된 바 없었음(즉, 현존하는 위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6월 3일까지 차벽을 설치한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결정타입니다. 헌재에 따르면, 경찰이 위험성이 없는데도 차벽을 철수시키지 않은 행위는 물론 잘못되었지만, 폭력행위 발생일로부터 4일이 지난 후인 2009년 6월 3일 당시에 ‘모든 요건을 충족시키는 상황이 존재함을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대상을 특정하여 적절한 수단이나 방법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폭력행위 발생일로부터 4일이 지난 후까지 차벽을 철수하지 않았다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말 엄격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헌재가 현장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이런 결정을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다른 방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벽 설치로 모두 해결을 보려 한 것에 대한 일침입니다. 주말에 있었던 세월호 집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법익균형성에 대한 내용입니다. 헌재는 경찰의 통행제지행위에 대해 당시 상황을 본다면 공익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만약 있다고 해도 서울 시민이 입는 피해가 훨씬 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헌재는 이 사건 경찰의 통행제지행위에 대해 일정 조건 하에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절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 균형성을 결여하여 과잉금지원칙 위반으로 위헌결정을 내렸습니다.
보충 소수의견은 과잉금지원칙 위반에 동의하기는 하나 그보다 앞서 근본적으로 법률유보 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라고 보고 있는데, 피청구인인 경찰청장이 통행제지행위의 근거로 든 경찰법과 경찰관직무직행법의 법률 조항들이 법률적 근거를 갖추지 못해서 위헌이라는 말입니다.
아무튼 위와 같은 이유로 위헌결정이 났습니다. 헌재가 보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새로운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이 사건 헌재의 결정을 토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것으로도 세월호 집회 당시 경찰의 차벽 설치 행위에 대해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성일 : 2015년 4월 21일 2015/11/15 - [낙서] - 차벽 위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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